DP 시즌 1의 마지막에 나온 김루리는 자신의 친구 석봉이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자신도 당하고 있는 군내의 구타 및 폭력행위에 대해 심한 모멸감을 느끼게됩니다. 그나마 참을 수 있었던건 어머니의 대한 걱정과 석봉이와의 우정으로 견뎌내고 있었지만, 석봉이 사건이 터지면서 트리거 작용이되어 분대원들을 향해 총기난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DP 시즌 2에서도 김루리 일병의 사건을 이어가며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요. 실제로 자국 내에서 발생했던 총기사건 또한 김루리 일병의 총기사건과 매우 흡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참혹했던 총기사고 사건 5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총기사건 5가지
글을 쓰면서도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총기사건이 정당화 될 순 없겠지만, 그들이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전에 이런 참혹한 사건이 반복됨에도 왜 사전방지가 이루어지지 못 하는지 통탄스러운 마음입니다.
1.530 GP 총기난사 사건
05년 6월 19일 경기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 보병사단 530 GP에서 김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8명사망, 4명이 부상당한 사건으로 이른바 ‘김일병 사건’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최초 사건 발생 당시 북한군의 공격이라고 전파되기도 했는데요. 부대원 중 ‘인사평가점수’가 가장 높았던 김일병이 이런 사건을 저지른 이유는 ‘병영부조리’인 것으로 밝혀져 군의 병영실태에 대해 크게 부각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2.제 28 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85년 2월 24일 화학지원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8명 사망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사건 이후 가해자인 박 이병은 도주하였으나 얼마 안 가 자수하게되었습니다. 결국 부조리와 가혹행위로 인해 사건을 벌인 것이지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3.제 2 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11년 7월 4일 강화군에 자리한 제 2 해병사단에서 일어난 해병 사건 중 가장 최악의 사고입니다. 김 상병이 소주 1병을 마시고 일으킨 사건으로 간부 1명 병사 3명 사망 2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후임이 선임을 향해 총기를 발사한게 아닌, 선임이 후임을 향해 쐈다는 점이 특이한 사건입니다. 이는 해병대에 내려오는 부조리 중 하나인 기수열외 ( 선임 기수 해병을 후임들이 존중하지 않고 하극상을 벌이는 가혹행위) 로 인해 생긴 사건입니다.
4.조 일병 총기난사 및 월북사건
84년 6월 26일 강원 고성군에 자리한 제 22보병 사단 522GP 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사건 직후에는 북의 급격으로 판단했으나 조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 한 후 북으로 월북한 사건입니다. 내무반에서 자고 있던 병사들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조 일병을 뒤 쫓아 수색하던 수색대원이 발목 지뢰를 밟아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15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를 야기하여 역대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5.내곡동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
15년 5월 13일 오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의 52향토보병사단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에서 있었던 총기사건이며 묻지마 살인이다. 동원훈련 중 영점사격장에서 뒤로 돌아 다른 예비군들을 한발 한발 조준해 사격한 뒤 스스로 총을 쏴서 자살하였다. 8발로 2명을 각각 사망시키거나 중상을 입혔으며 1발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사실 군생활이 끝난 예비군이 이런 일을 벌일거라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라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루리 총기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은 제 2 보병사단 사건
공통점
- 근무가 끝나는 시간 발생한, 최전방에서 일어난 총기사건
- 직접 잘못을 하지 않은 가족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공개되어 많은 비난을 받음
- 일부 사망자는 ‘후송대기 보류, 상급 부대 지시오기 전까지 대기할 것’이라는 문자로 후송이 1시간 늦어진 것 때문에 저혈당 쇼크, 과다출혈로 사망
- 군에서 거짓말까지 하여 범인만의 문제로 사건을 몰아가려함
- 범인은 유가족들에겐 사과하여도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군 당국에게 많은 분노를 표출